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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복이 되어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 10. 12:00

    너는 복이 되어라.(시 1:1-3)

     

    성경은 우리에게 ‘복을 받으라’ 라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복이 되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체가 복된 존재가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만 복이 될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고 잘 살 수 있도록, 너를 통해서 참으로 복된 삶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며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여기서 개역 성경에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라고 하였지만은 개정 성경은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표현이 더 원어에 맞는 번역이라 보여집니다. 영어성경도 “I will make of you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and make your name great, so that you will be a blessing.”(NRSV)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네가 복이 되겠다”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택하신 첫 번째 씨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이 복입니다. 그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 복입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라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넘어, 저는 시편 1편이 곧 성경 전체의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 내용인즉 인생의 길은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복 있는 사람의 길이냐 죄악에 빠져있는 자들의 길이냐 입니다. 그 길은 의인의 길이냐 죄인의 길이냐 이고, 그 길은 생명의 길이냐 멸망의 길이냐, 좁은 길이냐 넓은 길이냐 입니다. 인생의 길은 단 두 가지뿐이다 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인생의 길에서 오늘 읽은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이 시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우리는 여기서 죄에 빠지는 세 가지 모습 또는 죄성이 깊어지는 세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악인들(레솨임), 죄인들(하타임), 오만한 자들(레침)은 인격이 신실하지 못한 자들, 하나님 뜻에서 벗어난 자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복 있는 사람은 죄를 피하는 자, 죄를 멀리하는 자, 죄와 상관이 없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1) 복 있는 사람들은 인격이 신실하지 못하고, 거짓을 밥먹듯 말하고, 죄악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자들의 감언이설(아차트)에 넘어가지 않는 자들입니다. (2)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뜻에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 악행이 몸에 베어있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데레크) 않는 사람들입니다. (3)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의 세력과는 협상하거나(모솨브)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은 죄악을 떠난 사람,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위대한 선포요,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위대한 선포로 시작합니다. 이는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절대 진리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저는 시편 1편으로 성경이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인정받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고 칭함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죄를 떠난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죄인임을 알기 때문이고, 죄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인지 모르는 사람은 죄를 짓고 삽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지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삽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이 죄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라고 모든 인생들이 죄인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들은 다 죄인입니다. 그들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학식이 있건 없건, 명예가 있건 없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으면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반면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도저히 죄인의 길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구원에 관해서, 생명에 관해서, 행복에 관해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행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 칭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윤택함이 복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복 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복 되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주어도 복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오히려 화가되는 법이다. 악인에게 돈을 주면 돈으로 악한 짓만 하다 탕진하게 됩니다. 악인에게 권력이 가면 그 권력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야 맙니다. 악인이 잘 나가면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성경은 물질적이고 유형적인 복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고, 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복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된 사람이 되면,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세상의 가치판단에서 볼 때 잘살든 못살든, 세상의 기준으로 잘나가든 못나가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복된 자신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고, 많은 사람이 평안을 얻고, 많은 사람이 희망을 보고,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복된 상태, 복된 존재로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복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1편 1절이 이것을 선포하고 있으며, 복된 사람은 바로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죄와 상관없는 삶, 죄를 떠난 삶을 산다면 이미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죄와 상관없다면 이미 복된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의 가정이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복된 남편, 복된 아내, 복된 가정이 된 것입니다. 죄와 멀어지는 공동체를 이루어간다면 그 공동체는 복된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편 2절도 복된 사람이 누구인지 1절에 이어 계속 이야기합니다. 율법이란 단어를 대신해서 말씀이란 단어를 넣어 읽어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토라)을 즐거워하여 그의 말씀(토라)을 주야로 묵상하는(하가) 도다.”

     

    시편 1편의 1절과 2절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씀으로 쓰인 히브리어, 토라는 모세오경을 일컫는 말이자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묵상에 해당하는 하가는 동물이 되새김질 하듯이 곱씹으면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읊조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절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토라를 금보다 더 사랑하고(시 119:127) 하나님의 토라를 항상 읊조리며 행하는 자로다(시 103:18).”

     

    성경은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행하는 사람이라고 선포하며,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의 뿌리를 생명수에 꼽고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더 이상 하나님을 찾는 일이 없고, 영적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지 오래라면 수맥과 끊어진지 오래된 메마른 땅의 나무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날마다 생명수를 공급받으며 건강한 잎사귀의 빛과 향내를 못내 드러내는 좋은 나무와 같다면 그는 분명 복된 사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신 복된 사람입니까? 시편 1절과 2절이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혹시나 지금 이 시간, 여기에 대해 나 자신이 의심스럽다해도 낙심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가 여러분을 부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복된 사람이라 불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쉽게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까지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죽기까지(빌 2:8)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까?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이 오신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합니다(갈 1:4). 우리를 죄와 상관없는 삶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된 사람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너무나 쉽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죄를 떠나 사는 길을 확실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그 어떤 수단으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의 힘으로 믿을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이 결코 열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재산도 빼앗아 가시고, 복주시기 위하여 건강도 빼앗아 가시고, 복 주시기 위하여 때론 환경을 어렵게 만들게도 하시고, 복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겪게도 하신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는 죄를 피해야합니다. 그리고 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오직 그 분만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덮으실 수 있는 분(시 32:1)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방패시고(삼하 22:3), 우리의 피할 반석이요(시 18:2), 피난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시 62:7).

     

    그 다음은 우리의 삶이 말씀에 뿌리박은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토라를 날마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읊조리고, 말씀이 삶의 방식, 삶의 체질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히 12:2). 그 분만이 죽을 인생들이 의지할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요 14:6). “바울 선생님, 어떻게 해야 제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행 16:30)라고 간수가 물었을 때, 사도 바울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행 16:31)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되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너는 복이 되어라”라는 하나님의 초대에 지금 응하십시오. 이 자리에 함께 하시고, 저와 함께 주님의 초대에 응하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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