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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 인생이 됩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 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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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인생이 됩시다.(눅 18:9-14)

     

    아무런 준비도 없는 사람이 해발 8,848m의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사람의 경험담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다보면 1,500m 이후로는 거대한 암벽이 등장하고, 4,000m를 넘어서면 가지고 간 물도 다 얼어버린다고 합니다. 5,000m 이후로는 만년설의 땅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7,000m 정도 올라가면 빙벽과 암벽이 엄청나게 많이 있고, 주변엔 온통 가파른 산이고, 인간 외엔 어떤 동물로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8,000m 이후로는 숨을 거의 못 쉬는데다, 초저기압이라서 버티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는 사람 10명 중의 한 명은 죽어서 돌아옵니다. 아무리 험한 산을 여러 번 올랐던 경험이 있고, 수많은 훈련과 준비를 했다고 해도 아차 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높은 산에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정상에 올랐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해발 몇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의 정상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추위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의 맨 꼭대기의 기온은 영하 38도입니다. 웬만한 무장 없이는 얼어서 죽을 정도입니다. 또한 산의 정상은 기압도 낮고 산소의 양도 극히 적습니다. 산소통 없이는 고산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강풍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우리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정상을 꿈꾸면서, 인생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정상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과 마찬가지로 오르는 과정 속에 수많은 영적 고비와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인생의 정상에는 바람이 강합니다. 숨 쉬기가 어렵습니다. 기온이 낮습니다. 무언가 우리는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고, 훈련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짓밟아가면서 그 길로 올라갑니다. 때로는 친구가 되었다가 때로는 원수가 되었다가 하면서, 오로지 목표는 자신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른 채 인생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인생의 정상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오늘 누가복음 18장의 본문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대조적으로 비유하면서 어떤 기도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가에 대해 교훈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예술을 이해한 작가입니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는 달리 누가는 누가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참다운 인간됨이라는 주제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참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내적 분열을 극복하여 자기 자신과의 일치와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누가는 양극의 균형이라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대조라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앞의 본문과 대조를 이루는 본문입니다. 앞의 18장 1-8절에는 과부와 재판장 비유가 나오는데, 누가는 과부의 비유를 들어 밤낮 부르짖고, 간청하는 끊임없는 기도, 인내의 기도를 가르칩니다. 과부는 힘없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모든 외적인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잘것없는 행위 같은 기도이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을 가졌음을 누가는 강조합니다.

     

    반면 오늘의 본문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대조적으로 설명하면서, 앞서는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의 위험성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단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경멸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경건한 자기도취입니다. 바리새인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결론은 하나님이 바리새인의 기도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깁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위한 준비는 짧았습니다. 그냥 서서 즉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실제로는 자신을 향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서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세리의 기도 내용은 짧았습니다. 그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칩니다. 그의 기도는 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세리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거리를 느낍니다. 그는 자기가 진실로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 앞에서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바리새인은 자기 자랑만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였습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자랑이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크게 반성하면서 그분 앞에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내놓는 기도의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본문의 결론입니다.

     

    2. 바리새인은 자기 스스로 인생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정상은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곳, 구원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우리 영혼의 본향입니다. 그곳은 자기의 의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의 힘, 나이, 업적, 재력, 외모를 의지하면 언제든지 도중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실패하고, 추락하고, 깨어지고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산에 오를 때 다시 준비하고 올라오라고 우리를 넘어뜨리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넘어지는 이유를 모릅니다. 왜 나만 겪는 고통이냐고 한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이럴 수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살았다고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명품 인생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다가 깨부수고, 또 깨부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않으면 깨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명품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공은 수없이 많은 도자기를 깨어 부숩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이 다듬이시고, 정성을 들이시겠습니까?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깨어지고 난 이후 자신을 쓰레기 인생이라고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뜨리고 난 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시 정성을 들여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깨셨지만 다시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깨어졌으면, 내가 추락했으면, 내가 실패했으면, 내가 아직 산에 오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구나 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작품으로 다시 반죽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정상은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인생의 정상은 세리처럼 그리고 시편 40편의 다윗의 기도처럼,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애통해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의 혼이 담긴 명품 인생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명품 인생으로 만들어 집시다. 겸손히 그 길로 올라갑시다.


    출처: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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