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존 웨슬리의 리더십
    성경적 구원의 길 2008. 1. 22. 01:28

    사용자 삽입 이미지Foundery



     

    존 웨슬리의 리더십


     

    이관수


    지도자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와 장소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 앞에 어리석음일 수밖에 없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가진 공통점은 자신을 들어 사용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관심했다. 이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18세기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의 목사였던 존 웨슬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18세기 영국에서 메소디스트(Methodist) 부흥운동을 일으킨 인물인 웨슬리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웨슬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민감했다. 하나님과의 교감이 먼저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웨슬리를 부르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Ⅰ.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옛적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왔음을 알고 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이사야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의미는 지도자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음을 확신하였다. 어머니 수잔나는 1709년의 목사관 화재 사건을 통해 존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음을 확신하였고, 존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a bland plucked from the burning)라고 스가랴 3:2를 인용해 불러주었다. 1737년경 웨슬리는 이러한 성경 표현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였다. 이 사건은 웨슬리에게도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살면서 여러 번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웨슬리의 일기를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의 직접적 언급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웨슬리 자신이 출판을 염두에 두면서, 일기(Journal)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웨슬리의 개인적인 편지 속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언급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웨슬리는 1739년 6월 23일자 동생 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소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두 가지 소명을 받았다. 하나는 안수식 때 감독으로부터 받은 부름이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권위를 주노라.”

    또 하나는 나의 목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명하는 특별한 부르심(extraordinary call)이 있다. 이는 내가 하는 일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진리로 증거 되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런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extraordinary manner)으로 나의 소명을 증거 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 나의 평범한 부르심(ordinary call)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시고 계시는 것이다.

     

        1789년에 발표한 목회적 직무에 관한 설교(웨슬리 설교 121번, “예언자와 제사장”)에서도 웨슬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 설교의 본문은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라는 히브리서 5:4의 말씀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내적 부르심과 교회의 외적 부르심을 구분한다. 웨슬리는 자신이 말하는 목회자로서의 권위가 감독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권위(authority)의 원천은 만물의 저자(the Author)로부터 비롯된다는 진리를 웨슬리는 확신하였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강력한 증거는 영혼 구원의 책임으로 나타난다. 웨슬리는 사소한 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25만 마일의 전도 여행과 4만 번 이상의 설교로 채웠다. 웨슬리가 오직 한 가지 일로 자신의 생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서 드러난 또 하나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증거는 자신의 사역의 열매를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돌린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슬리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 재산과 소유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Ⅱ. 영적 분별력을 가진 리더

     1. 하나님의 뜻 추구: 성결

    지도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영적 분별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분별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다.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성경의 권위에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기를 원했다. 웨슬리는 성경이 말하는 대의가 성결임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성서적 성결(Scriptural holiness)의 추구야말로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였고, 자신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았다. 웨슬리는 영국 땅에 성결이 실종되었음을 발견했고, 다시금 성결을 외쳤다. 이러한 웨슬리의 영적 분별력을 하나님은 쓰신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그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 지는 것”이라고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결할 때 가능한 일이다. 성결은 하나님의 속성일 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웨슬리에게 있어 성결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은 1725년부터 진지하게 시작되었다고 보여 진다. 그는 “나는 내적인 성결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그것을 위해 기도했다”라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결을 추구하며 매주일 성만찬을 갖기 시작했고, 이것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웨슬리의 영적 분별력은 “성결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일평생 추구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 하나님의 뜻 추구: 영혼 구원의 책임

    영적 분별력을 갖춘 지도자는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웨슬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목회 사역에서의 최우선 순위로 놓았다. 성결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영혼 구원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웨슬리에게 있어 영혼 구원은 실천적 성결의 연장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영혼 구원의 사명이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깨달았고, 자신을 비롯해 모든 메소디스트들의 최우선 사명으로 가르쳤다:

     

    “오직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전부입니다(You have nothing to do but to save souls).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수고하고, 이 일로 쓰임 받으십시오.”

     

        웨슬리에게 있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단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영혼 구원은 전도와 양육을 다 포함한다. 오늘날 많이 쓰이고 있는 용어로 말하면 웨슬리의 야외설교는 열린 모임(open cell)이요, 소그룹은 양육 모임(close cell)의 개념이다. 웨슬리는 양육 없는 회심은 죽은 아이만 생산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야외 설교 이후 웨슬리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들과 함께 기도하고,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생겼다. 웨슬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목요일 저녁에 오라고 했고, 이것이 메소디스트 신도회(Methodist Society)가 조직되는 시발점이 된다. 자신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은 웨슬리에게 사람들을 보내신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구했을 것이다. 웨슬리는 영혼을 살리는 길, 곧 믿음이 증가하고, 은혜 안에서 영적 성장을 이루는 길이 공동체 안에서의 양육과 돌봄을 통해 이루어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건 훈련의 도구로 소그룹과 은혜의 수단의 활용이 중요함을 깨닫고 이를 적극 활용하였다. 이렇듯 웨슬리가 말하는 영혼 구원은 사람을 회심시키고, 성장시키는 일까지 포함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Ⅲ. 공동체 영성을 추구하는 리더

    웨슬리는 자신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한 권의 책”(homo unius libri)이기를 원할 정도로 성경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이 말은 웨슬리가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며, 목회 사역에 우선순위를 두는 근거도 성경에서 찾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웨슬리가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목회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했다고 해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교제와 훈련이 없으면 곧 믿음이 사라지고, 다시 타락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고, 웨슬리는 공동체 영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웨슬리는 당시의 영국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동서남북을 둘러보십시오. 당신 마음에 드는 교구가 있습니까? 거기에 그리스도인의 영적 교제가 있습니까? 영적인 관계는커녕 대부분의 교구 회원들 사이는 모래로 만든 끈과 같은 관계는 아닙니까? 그들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친교가 있습니까? 영적인 교통이 있습니까? 서로의 영혼을 위한 돌봄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1. 양육과 돌봄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체 영성

    웨슬리의 리더십은 살아있는 영적 경험에 근거한다. 웨슬리는 자신의 영적 경험을 통해 발견한 바, 신자들의 영혼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신앙교육이 이루어질 때 신앙의 성장도 가능함을 깨닫고 믿음의 수준에 따른 양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웨슬리는 신학을 통한 믿음의 공급이 아니라, 더 잘 믿기 위한 교육 방법으로 실천적 신학을 공급한 것이다. 웨슬리는 건전한 신학(good theology)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어준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우리의 올바른 응답(appropriate responses)이 없는 신학이란 곧 죽은 정통과 다름없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다. 즉 올바른 믿음이 없이는 아무리 올바른 신학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로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거듭남, 영적 성장, 완전 성화의 생명력 있는 영적 경험의 유일한 수단이 된다:

     

    거듭남(New Birth): 거듭남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태아가 사람의 모습은 가졌으나 출생 이후에 비로소 모든 육체적 기관과 감각들이 온전하게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영적 감각들이 살아날 수 없다. 거듭남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서의 출발이다.

     

    영적 성장(Growth in Grace): 영적 성장이란 부모가 자녀를 낳을 뿐만 아니라 양육시키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 어린 아이에서부터 영적 어른에 이르도록 성장시키시는 과정이며, 우리의 영적 경험이다.

     

    완전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완전 성화는 영적 성장의 깊은 단계이다. 이는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다. 완전 성화의 경험은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웨슬리는 이러한 영적 경험에 근거를 둔 리더십을 통해 메소디스트 신도회 회원들의 영적 경험의 각 단계 마다 필요한 양육 체계를 공급하였다. 이는 신자들의 영적 삶을 유지하도록 돕고,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다. 웨슬리는 속회(class)와 밴드(band) 모임을 신도회 회원들을 위한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의 체계로 관리하였다. 영적 가족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양육(support)과 훈련(discipline)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 돌봄(accountability)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웨슬리의 리더십은 이러한 양육 체계를 통한 양육과 훈련, 그리고 영적 돌봄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2. 공동체 훈련을 통해 사람을 세우는 리더십

    먼저 웨슬리의 공동체 훈련의 주된 방법은 성경과 선별된 책들을 통한 교육이었다. 웨슬리는 계속적인 배움이라는 방식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웨슬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마 28:20)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제자로 형성되어가기 위해 계속적인 배움을 실천하였다. 또한 웨슬리는 영적 지도자들에게도 이러한 배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매일 말씀을 읽고, 책을 읽으라고 지도하였다. 웨슬리는 평신도 설교자들에게는 하루에 다섯 시간은 책을 읽으라고 요구하였다. 웨슬리는 독서의 맛을 모르겠다는 설교자들이 있으면, 독서의 맛을 경험하든지 아니면 설교자의 직무를 그만 두라고 충고하였다. 웨슬리는 평신도 설교자들이 필히 읽어야할 책들을 선별하여 『기독교 문고』(Christian Library)라는 이름으로 50권을 만들어 그 안에 다양한 신앙의 선조들의 글과 생애 등을 축약하고 선별하여 제공하였다. 웨슬리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들의 역할에 필요한 성경적, 신학적 지식을 갖추도록 도왔던 것이다.

     

    두 번째로 웨슬리는 공동체 모임에서의 리더의 역할과 대화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래서 리더는 대화를 통해 중보기도와 간증이 나오게 하고, 이것이 곧 성결의 추구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하였다. 웨슬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다는 성경적 진리를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야고보서 5:16을 소그룹 모임과 그 규칙을 세우는 근거 말씀으로 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모임의 형태를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을 닮아가는 상호 관계의 중요성을 훈련시켰다.

     

    개인적 모임(Personal Conferencing): 웨슬리는 두 사람의 합심 기도가 얼마나 중요함을 알았다.(마 18:19) 웨슬리는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모였을지라도 영적인 대화와 영적 돌봄 그리고 지적인 격려를 하는 작은 모임을 갖도록 하였다. 웨슬리는 평신도 리더들로 하여금 이러한 모임을 갖도록 격려하였는데, 여기서 리더의 역할은 이러한 모임을 통해 영적인 삶을 나누고, 영적인 도전을 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메마른 심령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서로가 힘이 되어 용기를 얻고 서로를 배우게 된다.

     

    소그룹 모임(Small Group Conferencing): 웨슬리는 모든 메소디스트들로 하여금 매주 속회 또는 밴드 모임을 갖게 하였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이와 같은 모임에 참여하고 인도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소그룹 모임들의 목적은 성결한 삶을 목표로 하는 영적 성숙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었고, 기도와 권면으로 상호 영적 돌봄과 서로를 지지해주는 것이었다.

     

    연회(Large Conference): 연회는 평신도 설교자들의 모임이다. 즉 리더들의 모임이다. 웨슬리는 이 모임을 통해 평신도 설교자들의 영적인 삶을 고양시키고 격려하였다. 또한 중요한 신학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리고 목회의 현장으로부터 영적 휴식을 취하게 함으로 서로를 돌보고, 개인의 심령의 부흥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웨슬리는 리더를 세우고, 훈련된 평신도 리더들을 통해 평신도들을 양육시켰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공동체 안에서 성장시키려고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웨슬리는 리더를 만드는 리더십을 가르쳤다. 웨슬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성숙한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까지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웨슬리의 리더십은 소그룹 리더들의 생각과 삶에 크게 영향력을 미침으로 메소디스트 부흥을 이끄는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결론

    미국 나사렛교회의 감독을 지낸바 있는 데이빗 맥켄냐(David L. McKenna)가 영국 메소디스트 역사가인 고든 럽(Gordon Rupp)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만약에 웨슬리가 이 시대에도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가 텔레비전에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럽의 답변은 간단하면서도 확신있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가 필자로 하여금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웨슬리안 리더(Wesleyan leader) 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던져 주었다. 지금 웨슬리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면 무엇을 외칠 것인가? 웨슬리는 분명 그 때와 같이 불신자를 향해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free grace)를, 신자를 향해서는 완전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고,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고 널리 알렸던 사람이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가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도구로만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일 것이다.

    1997년 말 한국의 경제적 위기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과 목회에도 위기를 맞이하였고, 그 원인 중 하나를 리더십의 문제에서 발견하였다. 당시 경제 전문지 『아시아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도 한국의 IMF 경제 체제의 원인을 한국 기업가들의 리더십 부재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이제 리더십은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목회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적 변화와 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일수록 리더십의 역할은 공동체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리더십 문제는 눈보다 귀와 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의 말은 이 시대에 설득력 있는 말이다. 리더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영혼의 소리를 듣고, 영혼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웨슬리는 그 시대의 신음하는 영혼들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리더였다.

    영적으로 쇠퇴 일로에 서있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존 웨슬리의 리더십』이라는 이 소고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참고 자료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우리 한국교회 안에 다소 미진했던 웨슬리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웨슬리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의 속사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음에 늘 감사했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하고 성장시킬 방법을 찾았다. 이것을 본받지 않는다면 모든 목회가 헛된 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존 웨슬리가 보여준 목회 리더십이 오늘날 깨어있는 웨슬리안들을 통해 영적 생명력을 잃은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Heitzenrater, Richard P. The Elusive Mr. Wesley: John Wesley His Own Biographer. Vol. 1.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84.

    Jackson, Thomas. (ed.). The Works of John Wesley(Third Edition). Vol. 5.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8.

    Jackson, Thomas. (ed.). The Works of John Wesley(Third Edition). Vol. 8.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8.

    Telford, John. (ed.). The Letters of John Wesley(Reprinted). Vol. 1. London: The Epworth Press, 1960.

    Coleman, Robert E. 성령의 전도와 교회성장Nothing to do but to save souls〕. 홍용표 역. 서울: 예찬사, 1996.

    McKenna, David. What a time to be Wesleyan!: Proclaiming the Holiness Message with Passion and Purpose. Kansas City, MO: Beacon Hill, 1999.

    Rack, Henry D. 존 웨슬리와 감리교의 부흥Reasonable Enthusiast: John Wesley and the Rise of Methodism〕. 김진두 역.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2001.

    Snyder, Howard A. 혁신적 교회갱신과 웨슬레(4판)〔The Radical Wesley〕. 조종남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5.

    Sweet, Leonard. 귀 없는 리더? 귀 있는 리더!Summoned to Lead〕. 강봉재 역. 서울: IVP, 2005.

    Waller, Ralph. 존 웨슬리John Wesley: A Personal Portrait〕. 강병훈 역. 서울: kmc, 2004.

    Weems, Lovett H. Jr. John Wesley's Message Today.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91.


    「기독교 타임즈」 제439/440호(2006년 8월 26일/9월 2일)에 실린 논고.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