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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로 쓴 감리교회 교리 이해2
    감리교회 교리 2010. 10. 8. 13:23

    -회개-

     

    진정한 회개란 (눅 19:1-10)

     

    1. 구원이란

    구원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단절되었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원수 사이에서 사랑의 관계로 새롭게 형성된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쉬운 말로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여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의 출발

    이러한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데 있어 중요한 아니 필수적인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체를 예수님 앞에 고백하지 않는 한 진정한 회개는 없습니다.

     

    내 눈 속의 있는 들보(자기 중심성, 죄성, 구체적으로 분노, 교만, 기만, 시기, 인색, 공포, 탐닉, 정욕, 나태)를 빼내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속의 들보는 안보고 타인의 티(결점)만 보는 그릇된 성향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창 3장과 4장에서의 질문,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가인에게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것들은 우리 자신의 실체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3. 진정한 회개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의 실체를 묻고 계십니다. 베드로를 보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신 의미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거짓 자아가 드러나고 자아의 근본이 바뀌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바뀌어지기 어렵기에 처절한 싸움일 수밖에 없고, 회개의 열매가 나타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피 터지는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후회한 것을 회개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했으면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죄에 대한 미련과 세상적인 근심이 여전히 남는다면 그것은 후회 차원일뿐입니다(고후 7:10).

     

    4. 삭개오의 회개

    세상 사람이 무시, 경시했던 졸부 삭개오였지만 예수님은 그도 관심하셨습니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며 살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처음부터 진정으로 원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살아갑니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나는 안돼,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나도 어쩔 수 없잖아...”

     

    예수님은 그 사람의 약점만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삭개오의 마음이 어디에 나타나있는가? 행동에 나타나있습니다. 3절 “보고자 하되” 4절 “앞으로 달려가서, 올라가니...”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은 올려다보십니다. 아나블렙소, 삭개오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이것은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간구했던 말, 아나블렙소, “위(하늘)를 쳐다보기 원합니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길 원하십니다. 두루뭉실한 회개가 아닙니다. 정확한 회개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실체를 예수님 앞에 정확히 고백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자신의 실체를 곧장 파악하고 고백합니다. 8절 앞의 행간을 읽어보면 마치 삭개오의 회개가 들리는 듯합니다. “나는 도둑이었습니다. 앞으로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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